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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Beasts of a Little Land) - 김주혜, 박소현

YeaYea 2024. 1. 1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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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판 표지

 

서정적이면서 아름다운 표지와 상반되는 느낌의 제목이 인상적인 김주혜 작가님의 '작은 땅의 야수들 (Beasts of a Little Land).'


책을 읽고 나서 보니 '작은 땅의 야수들' 만큼 그 시대의
대한민국인들을 잘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문판 표지

 

김주혜 작가님은 인천에서 태어나 9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작은 땅의 야수들 (Beasts of a Little Land)' 영문판은 2021년에 그리고 한글판은 2022년에 출간되었다.

 

영문판 표지에서 주인공들의 주인공인 호랑이의 모습이 시선을 끈다.
 

 

1917년
하늘은 하얗고 땅은 검었다. 처음으로 해가 떠오르기 전 태초의 시간 같았다. 구름은 그들이 속해 있던 영역을 떠나 나지막이 내려와, 마치 땅에 맞닿은 듯 보였다. 거대한 소나무들이 창공을 둘러싸고 어렴풋한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런 흔들림도 소리도 없었다.


작은 땅의 야수들 (Beasts of a Little Land)
김주혜 장편소설 | 박소현 옮김
플로로그

 

 

작가님을 소개하는 글과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말에서 이미 서사가 완성되는 모습이 보였고 '프롤로그' 첫 문단을 읽고 '와-' 하며 대작을 만났다는 걸 깨달았다.

 

'감사의 말'에 보니 LA에도 다녀가신 듯한데 진작 이 책을 만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작은 땅의 야수들 (Beasts of a Little Land)'의 감상평에 보면 단숨에 읽었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나는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다 너무 좋았어서 다음장으로 넘기는게 아까워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웹툰을 보듯 아껴봤다. 
 


김주혜 작가님이 6년에 걸쳐 집필했다는 '작은 땅의 야수들 (Beasts of a Little Land)'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가혹하고 어두웠던 시대의 모습들이 담담하게 담겨있었다. 


 
그 시대를 살아내던 주인공들의 이야기들과 서로 우연하게 또 필연적으로 인연이 닿는 전개에서 정말 소설이란 건 이런 천재들이 쓰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소현 번역가는 굉장한 애정과 언어 구사력, 그리고 예술성을 발휘하여 한국어만의 정감이 담뿍 담긴 뿌듯한 작품을 만들어 주었다. 2019년, 故 최인호 작가의 단편을 번역하여 영국 잡지 <그란타>에 게재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번역이라는 작업이 작품에 대한 사랑 없이는 얼마나 힘들고 소득 없는 이인지 잘 알고 있다. 문학을 위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작업해 주신 박소현 번역가는 진정한 예술가다.


작은 땅의 야수들 (Beasts of a Little Land)
김주혜 장편소설 | 박소현 옮김
감사의 말

 
 

작가님의 표현대로 박소현 번역가님은 정말 '진정한 예술가' 인 것 같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글들로 가득찬 '작은 땅의 야수들 (Beasts of a Little Land)'을 읽는 내내 참 행복했던 것 같다.

 

특별히 좋았던 부분중에 스포일러가 없는 몇 가지를 나눠본다.
 
 

가장 놀라운 사건들은 아무도 눈치챌 수 없이 작은 바늘 하나가 툭 떨어지듯 시작하며 꼬리를 물고 연쇄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은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더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들이었다.


모두가 꿈을 꾸지만, 그중 몽상가는 일부에 불과하다. 몽상가가 아닌 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보이는 대로 세상을 본다. 소수의 몽상가들은 그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달, 강, 기차역, 빗소리, 따스한 죽 한 그릇처럼 평범학 소박한 것들도, 몽상가들은 여러 겹의 의미를 지닌 신비로운 무엇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에게 세상은 사진이라기보단 유화여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바깥쪽에 있는 색깔만을 바라볼 때 이들은 영원히 그 아래 감춰진 색깔을 바라본다. 몽상가가 아닌 사람이 유리를 통해 보는 풍경을, 몽상가들은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셈이다.


마치 어머니가 불러주곤 하던 정답고 그리운 옛 노래 같다고. 혹은 서랍 뒤쪽에서 아직 뜯지 않은 채로 발견된, 오래전에 사랑했던 사람이 보내준 편지 같다고. 아니면 어느 봄날 갑자기 되살아난 고목 - 검게 죽어있던 가지들이 만개한 꽃들로 가득해져, 꽃잎 한 장마다 전부 나, 나, 나라고 외치며 타오르는 한 그루 나무 같다고. 하지만 그의 마음을 움직인 건 그저 지나간 시절과 추억의 잔해만이 아니었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 전에는 보지 못했던 그것은 대체 무얼까?


저녁 8시 30분이 지난 시각이었지만 서쪽 지평선에는 아직 태양이 남긴 황혼의 회색 천이 엷게 드리워져 있었다.


작은 땅의 야수들 (Beasts of a Little Land)
김주혜 장편소설 | 박소현 옮김

 

때마침 Netflix에서 방영 중인 '경성크리쳐 (Gyeongseong Creature)'를 보며 '작은 땅의 야수들 (Beasts of a Little Land)'에 나온 주인공들의 모습들과 그 시대의 풍경들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

 

경성은 오랫동안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그리고 기독교, 불교, 천도교 신자들의 은밀한 무대이자 잠복처가 되어왔다. 일제 치하에서는 그들 대부분이 독립이라는 같은 목표 아래 각자의 차이를 제쳐두고 힘을 모아 연대했으나, 일단 독립이 되자 그 일부는 자신들이 잘못된 편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작은 땅의 야수들 (Beasts of a Little Land)
김주혜 장편소설 | 박소현 옮김

 


'태어나보니 일제감정기 시대였다'는 경성크리쳐 (Gyeongseong Creature)에서 장태상(박서준)이 초반에 했던 대사와 '작은 땅의 야수들 (Beasts of a Little Land)'에 나오는 인물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이나 신념이 부딪치는 모습들에서 조금 충격을 받았다.
 

특이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마음으로 그 시대를 살아갔을 거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다양한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정말 모든 부분이 좋았던 책이라 강력하게 추천한다.
 

곱게 자란 자식

 

마지막으로 읽으면서 괴로울 정도로 마음 아픈 장면들이 가득했지만 여전히 나의 인생 웹툰인 이무기 작가님의 다음 웹툰 '곱게 자란 자식'도 조심스레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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