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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YeaYea 2024. 6. 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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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책 표지가 마음에 들어 아무 생각 없이 읽게 된 요나스 요나손(임호경 옮김)의 장편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재미있게 다 읽고 나서보니 십여 년 전에 이미 여러 나라에서 몇백만 부가 팔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베스트셀러였더라. 시대에 뒤처진 나님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되었다.

 

책 표지만 보고 리뷰도 확인 안하고 읽은 건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서정적인 코미디를 예상하고 읽었는데 코미디는 맞긴 했는데 첫 장부터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전혀 예상치 못한 스릴 넘치는 황당무계한 스토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The 100-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

  

Hundraåringen som klev ut genom fönstret och försvann

 

 

한글과 영문 그리고 원문인 스웨덴의 책 표지를 비교해 보면 스웨덴의 표지가 조금 진지해 보이긴 해도 가장 책 내용을 충실하게 표현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한글 번역본 책의 표지가 가장 읽고 싶게 만드는 느낌이다. 

 


나의 할아버지는 청중을 휘어잡는 재능이 있으셨다. 코담배 냄새 물씬 풍기며 지팡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벤치에 앉아 계시던 그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또 그분의 손주인 우리가 입을 헤벌리고서 하던 질문도 아직 귀에 생생하다.


<할아버지.... 그게... 진짜 정말이에요....?>


<진실만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없단다>라고 할아버지는 대답하셨다.


이 책을 그분께 바친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임호경 옮김)
The 100-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
Hundraåringen som klev ut genom fönstret och försvann - Jonas Jonasson

 

작가인 요나스 요나손은 할아버지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알란 칼손이 실존 인물인 건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하지만 알란의 인생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알란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었다. 그 메시지가 소년의 영혼에 뿌리는 내리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렇게 정착한 뒤에는 영원히 남았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임호경 옮김)
The 100-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
Hundraåringen som klev ut genom fönstret och försvann - Jonas Jonasson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에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라는 어머니의 메세지가 영혼에 뿌리를 깊이 내린 듯하다.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마다 보이는 알란 칼손의 태평한 모습에 나는 태평하질 못했다. 제목에서 너무나도 분명히 알란 칼손이 100살까지 산다는 걸 알고 책을 읽어 망정이지. 

 

젊을 때부터 100세의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스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알란 칼손의 이야기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장면중 최대한 스포가 없는 몇 가지를 나눠 보겠다. 그리고 이 책의 옮긴 '임호경'님 또한 굉장한 능력자이신 듯하다. 등장인문들의 대화들도 그렇고 너무 재미있게 번역을 해주셔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거 같다. 

 


'혹시 오늘 신문 없어요?' 그가 물었다. '전 뭐라도 조금 읽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걸랑요.'

서장은 대답 대신 천장 등을끄고 감방 문을 거칠게 닫았다. 이튿날 그는 웁살라의 <미친놈 수용소>에 전화를 걸어, 빨리 와서 여기 있는 알란 칼손을 데려가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베른하르드 룬드보리의 동료들은 생각이 달랐다. 알란 칼손에 대한 치료는 완전히 끝났으며 이제 그들에게는 분석하고 거세할 다른 환자들이 많다는 거였다.

<7. 1929~1939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임호경 옮김)
The 100-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
Hundraåringen som klev ut genom fönstret och försvann - Jonas Jonasson

 

'슬기로운 깜방생활' 의 모범을 보여주시는 알란 칼손님.  

 


정말이지 요즘 세상은 모든게 제멋대로였다. 1940년대에는 겉모습만 보면 그 사람의 직업을 금방 짐작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8. 2005년 5월 3일 화요일 ~ 5월 4일 수요일>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임호경 옮김)
The 100-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
Hundraåringen som klev ut genom fönstret och försvann - Jonas Jonasson

 

책의 내용과 벗어나는 이야기이지만 많은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겉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걸 지금은 편견이라고 하지만 사실 자연스럽게 옛날부터 이어진 습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40년 보다도 이전 시대에는 계급에 따라 허락된 옷이 다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가 겨우 여섯 살이었을 때 아버지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성직자들을 조심해라.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조심해. 가장 고약한 것은 술을 마시지 않는 성직자들이란다.'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한 죄 없는 승객의 얼굴에 펀치를 날린 날에도 얼근하게 취해 있었고, 그 덕분에 스웨덴 철도청에서 즉각 해고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일화는 어머니가 현명한 충고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알란아, 주정뱅이들을 조심해라. 사실 제일 조심했어야 하는 사람은 나였지만 말이다.'


<11. 1945~1947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임호경 옮김)
The 100-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
Hundraåringen som klev ut genom fönstret och försvann - Jonas Jonasson

 

 

조기교육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주인공 알란 칼손은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술을 매우 좋아하는데 술을 먹고 비밀을 누설한 적은 있어도 술주정을 부리는 모습은 100세가 될 때까지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영국령 인도는 벌써 균열이 가고 있었다. 힌두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은 틈만 나면 싸웠고, 그 중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 빌어먹을 마하트마 간디는 뭔가 못마땅한 게 있으면 먹는 걸 중단했다. 

<13. 1947~1948년>



알란은 자기가 단 1분 사이에 쥐와 개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이러고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스탈린은 확실히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알란은 계속 모욕당하면서 앉아 있는 게 지겨워졌다. 그가 모스크바에 온 것은 도움을 주기 위해서지, 이렇게 침 튀기는 호통이나 들으려 함이 아닌 것이다. 이제 스탈린은 혼자 알아서 문제를 해결하든지 말든지 해야 했다.

'근데 말이죠, 아까부터 계속 생각하는 게 있는데요....' 알란이 말했다.

'먼데?' 스탈린이 폭발 직전의 상태로 소리쳤다.

'그 지저분한 콧수염 좀 싹 밀어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날 만찬은 이 질문으로 끝이 났다. 통역은 기절해 버렸다. 


<16. 1948~1953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임호경 옮김)
The 100-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
Hundraåringen som klev ut genom fönstret och försvann - Jonas Jonasson

 

 

역사 속 위대한 인물들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신박하고 재미있었다. 주인공인 100세 알란 칼손은 1905년부터 2005년까지 살아왔으니 시대가 그렇게도 했지만 워낙에 낙천적이고 독특한 성격을 가진 탓에 목숨이 위태로운 사건들을 시도 때도 없이 겪게 된다. 문제는 그 역사의 현장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표현한 내용들을 읽다 보면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작가의 안위가 걱정이 됐다. 따로 뉴스가 없는 걸로 보아 잘 살아있는 듯 해 다행이다.

 

 


'그렇다면 칼손 씨가 우리 회사에서 모종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기대하게 할 만한 어떤 경력이라도 있으신지요...?'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사실 전 미국에서 일했어요. 미국 뉴멕시코 주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요.'

에클룬드 박사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래, 엘란데르가 완전히 미친 것은 아니었다! 로스앨러모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는 온 세상이 다 아는 바였다. 아, 그렇다면 칼손 씨는 거기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전 커피를 서빙했어요.' 알란이 대답했다. 


<13. 1947~1948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임호경 옮김)
The 100-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
Hundraåringen som klev ut genom fönstret och försvann - Jonas Jonasson

 

 

이 책에서 제일 빵 터졌던 장면이다.

 

 


알란이 연극을 너무도 잘해다고 칭찬하자, 헤르베르트는 얼굴이 빨개지며 손사래를 쳤다. 진짜 바보가 바보 모습을 보이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러나 알란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살아오면서 만난 다른 바보들은 모두가 똑똑한 척하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18. 1953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임호경 옮김)
The 100-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
Hundraåringen som klev ut genom fönstret och försvann - Jonas Jonasson

 

 

중간중간 이렇게 은근하게 날카롭게 비꼬는 작가의 표현들이 좋았다. 

 

 


또 자기에게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달러화도 듬뿍 집어 주겠단다. 그것은 미국 대통력 해리 트루먼이 국민당에게 보낸 것인데, 국민당이 정신없이 타이완으로 도망치느라 깜빡 잊고 갔단다.


<18. 1953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임호경 옮김)
The 100-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
Hundraåringen som klev ut genom fönstret och försvann - Jonas Jonasson

 

 

다른 흥미로운 내용들이 더 많이 있지만 나누기가 조심스러워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최근 일에 치여 사느라 여러 날 동안 나눠서 읽었는데 한 번에 보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한다. 유튜브로 몇 가지 클립을 찾아보니 영화도 재미있어 보인다. Plex에 스웨덴어 + 영어 자막으로 된 영화가 있어 감상할 생각에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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